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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러스사이즈의 옷장
    너를 나이 들게 할 거거든/동국교지 2026. 4. 10. 16:56

     

    옷장을 열며

     

     십대 시절 나는 언제나 아슬아슬하게 BMI 과체중과 정상 사이의 몸무게를 유지했다. 내가 나 스스로를 의식하게 하는 데에는 비단 체중이나 체형뿐 아니라 다른 여러 요인이 존재했지만, 어쨌건 그 이유로 나는 오랫동안 검은 옷만 입고 다니는 학생으로 살았다.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명령을 의식한 결과였다. 십대 후반쯤 되어서야 나는 내가 밝은색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떻게 이때까지 그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 하고 놀랐다.

     

     

     근래 나는 꾸미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내가 어떤 스타일에 관심이 있고 또 어떻게 꾸미는 게 어울리는지 탐구 중이다. 내가 ‘꾸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자체가 최근이다. 무관심하게 살아 온 기간이 길어 취향의 공백 또한 넓은데,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하나씩 알아가는 일은 재밌다. 이 일이 가능해진 이유는 블로그나 유튜브 같은 미디어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이런 취향을 가진 사람도 있구나,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꾸밀 수 있구나, 남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구나……. 그러다가 알고리즘을 타고 접한 것이 플러스사이즈 패션 유튜브였다.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각자의 취향에 따라, 자신의 몸의 장단점을 알고 스스로 꾸미는 모습이 멋있고 인상적이었다. 같은 플러스사이즈 유튜버라도 몸무게나 BMI와 무관하게 나와 체형이 비슷하거나 비슷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보며 어떤 옷이 내게 어울릴지 혹은 어울리지 않을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영상과 그에 달린 댓글을 보아가며 나는 또다시 스스로의 몸을 의식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들의 영상은 내게 스스로를 숨기라고 명령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기를 독려하는데도 말이다. 그때부터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내가 내 몸을 의식하도록 만들까? 나는 나의 몸을 자꾸만 무엇과 비교하는 걸까? 이 글은 이렇듯 개인적인 경험과 질문으로부터 시작했다.

     

     

    규격 바깥의 패션

     

     사실 건강한 몸이란 미디어가 주입한 이미지다. ‘건강한 몸’이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군살 없고 근육이 드러나는 몸을 떠올리겠지만, 정말로 그런 몸을 가진 ‘건강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최근 바디 프로필의 유행 역시 그 연장선이다. 완성된 바디 프로필은 아름답고 건강한 몸으로 여겨지지만 그 과정은 전혀 건강하지 않다. 단기간에 이상적인 몸을 만들기 위해 극도로 절제된 식단과 운동을 병행하며, 촬영이 임박하면 근육을 선명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하여 물조차 마시지 않는다. 이 과정은 명백히 건강과는 거리가 멀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사진을 찍은 후에는 더욱 완벽한 몸을 위해 후보정을 거친다.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다. 완벽한 몸 이미지에 자신의 몸을 맞추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도 모자라 보정까지 해야 한다니.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아닌가? 그렇지만 이런 일은 무서울 정도로 비일비재하다. 바디 프로필의 예시뿐 아니다. 지금과 다른 몸이 되기 위해 과도한 방법을 사용하는 예시를 우리는 익히 접해 왔다.

     

     권력은 생산성이 떨어지는 인구를 배제함으로써 작동한다. 노동할 수 없는 몸, 재생산할 수 없는 몸은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몸으로 규정되고 이는 비정상적인 몸이라는 낙인으로 이어진다. 정상적인 몸과 비정상적인 몸을 가름하는 것은 이러한 문제를 일으킨다. 비만의 몸은 교정의 대상이다. 그것은 게으르고 질병에 취약한 몸이기 때문이다. 빅사이즈 의류는 생산할 필요 없다. 비만의 몸은 규격 외이므로. 이는 실제로 존재하는 다양한 체형을 삭제해버린다. 입을 수 있는 의류가 생산되지 않으므로 꾸밀 수 없을뿐더러 꾸미더라도 전시할 수 없다. 비정상이라는 낙인이 찍힌 몸들은 더더욱 자신을 숨기고 부정하게 된다. 마르고 이상적인 몸만을 전시하는 미디어는 이런 이미지를 고착화하였고, 그 결과 과한 다이어트, 거식증, 프로아나 등이 사회 문제로 등장하였다.

     

     바디 포지티브, 혹은 내 몸 긍정주의 등의 움직임은 이러한 배경에서 형성되었다. 이는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체형이 천편일률적인 체형으로 대표되는 상황에 반발하며 자신의 체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움직임을 말한다. 많은 사람이 ‘몸에 옷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옷에 몸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 불편함을 호소했고, 바디포지티브 운동은 미디어를 중심으로 개인적 실천부터 기업의 프로모션 전략 등 넓은 범위까지 퍼져나갔다. 국내외에 플러스사이즈 모델이 등장했고, 다양하고 현실적인 몸들을 미디어에 전시해 이들의 존재를 가시화했으며 이상적인 몸의 신화를 전복한 것이다. 빅사이즈 모델과 빅사이즈 쇼핑몰 등이 주목을 받은 것 역시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천편일률적인 사이즈의 의류로부터 벗어나 다양한 체형이 입을 수 있는 옷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패션 업계는 그제야 깨달았다. 기업들은 모두를 위한 패션을 전면에 걸고 마케팅 전략을 펼치기 시작했다. 더 많은 몸들이 입을 수 있는 옷, 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들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흐름의 일환으로 등장한 플러스사이즈 패션 유튜브 역시 정형적인 몸만을 전면에 내세우는 미디어에 반발한다. 이들은 플러스사이즈 신체를 당당하게 전시하며, 비정형적 체형, 비만을 가진 몸은 꾸며서는 안 된다는 사회의 명령을 거스른다. 유튜브에 ‘빅사이즈 패션’, ‘플러스사이즈 패션’ 등의 검색어로 검색하면 표준적이지 않은 자신의 신체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자신의 체형에 걸맞는 코디를 선보이는 플러스사이즈 패션 유튜버들의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유튜버들과 구독자들은 플러스사이즈라는 정체성으로 묶여 패션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고 유대감을 형성한다. 이들의 컨텐츠는 ‘꾸미고 전시할 수 없는 비정상적 몸’을 ‘꾸미고 전시할 수 있는 정상적 몸’의 층위로 이동시킨다. 이처럼 플러스사이즈 패션 유튜브는 기존의 정상적 몸 이미지에 대한 전복적인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몸 수선하기

     


     플러스사이즈 패션 유튜브는 이상적으로 생각되는 모습과 다른 몸 이미지를 전시하며 기존의 통념을 전복한다. 이러한 채널에 업로드되는 영상 컨텐츠는 대체로 다양한 의류 소개, 상황에 따른 룩북 등이다. 이들은 구독자에게 체형 커버 룩북과 해당 영상에 사용한 제품 정보를 공유한다. 그런데 이들의 컨텐츠를 살피다 보면 문득 위화감이 든다. 다양한 테마의 영상 제목 및 썸네일에는 대체로 ‘체형 커버’라는 키워드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제목의 영상들은 대개 이런 정보를 담고 있다. 다리가 얇아 보이는 코디, 팔뚝 살과 뱃살을 가릴 수 있는 옷, 목이 길고 키가 커 보이는 패션 등. 뱃살을 가리기 위해서는 셔링이 들어간 상의를, 목이 길어 보이기 위해서는 목둘레선이 깊게 파인 상의를 입는 것이 좋다. 신체의 장단점을 고려했을 때 어떤 체형은 하이웨이스트 하의를 입는 것이, 또 다른 체형은 로우라이즈 스타일을 착용하는 것이 조화롭다. 이러한 옷들은 다양한 몸들을 ‘이상적인’ 몸 이미지로 보이도록 만든다. 이러한 컨텐츠를 소비하는 구독자 및 시청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댓글에는 ‘몸무게에 비해 말라 보인다’, ‘키에 비해 다리가 길어서 비율이 좋다’ 등의 내용이 주로 담겨 있다. 신체의 어떤 부분이 고민이었는데, 영상 덕분에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다는 댓글도 발견할 수 있다. 여전히 이들은 ‘마르고 키가 크고 비율이 좋은’ 몸을 선망한다. 일정한 체형을 벗어나 다양한 몸을 전시하며 등장한 빅사이즈 패션이, 다시금 신체 정상성을 재생산하는 것이다. 이제 과도한 다이어트는 불필요하다. 영상이 소개하는 대로 패션을 활용하면 원래의 체형보다 오 킬로그램은 말라 보이고, 다리가 오 센티미터는 길어 보일 수 있다.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에 접어들며 개인의 몸은 그 자체로 경쟁력을 지닌 상품이 되었다. 자유경쟁 체제에서 외모는 자본이다. 외모가 개인의 노력으로 계발해야 하는 것, 획득할 수 있는 경쟁력이자 자산으로 변모하며 꾸밈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꾸미지 않는 사람은 노력이 부족한 사람이며 자유로운 경쟁 과정에서 그로 인해 불이익을 받더라도 책임은 그 자신에게만 존재한다. 이것은 노력한다면 충분히 습득할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콘텐츠는 소비문화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콘텐츠 시청자들은 댓글을 통해 옷이나 쇼핑몰 정보를 묻고, 때로는 유튜버가 직접 고정 댓글로 영상 내 착용한 의상 정보를 적어 두기도 한다. 이처럼 이 콘텐츠들은 외모를 꾸며야 한다는 사회적 명령과 더불어 소비를 조장한다. 기업과 미디어는 정상적 신체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는―가져야만 한다는 불안감을 조성하여 일정한 방향으로 보이게 만드는 패션 아이템을 소비하도록 한다. 특히 빅사이즈 패션이라는 블루오션은 이런 방식의 소비를 조장하기에 마땅한 시장이었다. 시장은 바디포지티브라는 움직임에 편승해 새로운 소비자를 만들어냈다. 이제 몸을 혹사시키는 대신 소비를 통해 신체적 콤플렉스를 벗어날 수 있다.

     

     플러스사이즈 패션 유튜버들이 전시하는 패션과 꾸밈에는 여전히 특정한 기준, 즉 권력이 생산한 정상적인 신체 이미지로 자신을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존재한다. 이때 ‘날씬해 보이는’, ‘키가 크고 비율이 좋아 보이는’ 몸으로 꾸미는 일은 다시 한번 배제를 작동시킨다. 그렇게 꾸미지 않는/못하는 몸이라면 어떨까. ‘날씬해 보이지 않는’, ‘키가 작고 비율이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몸은? 소비가 권력이 되는 현상은 이렇게 가지고 있는 몸이라는 기준 외에 새로운 배제의 기준을 추가한다. 그 기준은 자본일 수도 정보력일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비만이 계급적이듯 꾸밈 역시 그러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제 어떤 몸이 전시 가능한 정상의 몸인지, 어떤 몸이 그렇지 않은지 다시 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옷장을 정리하며

     

     꾸밀 자유는 종종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처럼 여겨지지만, 꾸미지 못하는 몸들이 있다. 표준적이지 않은 몸의 꾸밈이 금기시되고 불가능할 때, 플러스사이즈 패션 유튜브의 신체 전시는 이상적 몸이라는 허구를 해체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그들의 꾸밈은 다시금 이상적 몸 이미지를 추구한다. 이때 이들의 콘텐츠는 이상적 몸 이데올로기를 은폐하고, 권력이 강제하는 생존 전략으로서의 꾸밈을 개인의 자유로 은폐한다. 이처럼 플러스사이즈 패션 유튜브는 두 가지 층위에서 복합적인 의미를 만들어낸다. 꾸밈을 통한 자기표현을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규범적인 몸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꾸밈을 계속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새로운 질문이 생겨난다. 전복적인 꾸밈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규범을 벗어나서 어떻게 스스로를 꾸밀 수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규범적이지 않은 몸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을까?

     

     

     얼마 전 종종 챙겨 보던 플러스사이즈 패션 유튜브 ‘한솜 Hansom’에 새 쇼츠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베트남 여행에서 착용한 코디를 엮은 영상이었다. 그는 영상 고정댓글에서 자신이 단점으로 여기는 팔뚝 살을 감추기 위해 민소매를 입지 않는 습관이 들었다고 말했다. 동시에 이번 여행에서는 자신의 몸에 당당해지기 위하여 평소 입지 않는 스타일의 옷들에 도전했다고 밝혔다. 이 글의 토대가 되는 문제의식을 키워가던 중이었기에 그 영상이 더욱 각별하게 느껴졌다.

     

     여전히 급격히 살이 찐 연예인의 영상에는 걱정이라는 미명의 평가와 참견이 만연하고, 마른 연예인을 흠모하며 과한 다이어트를 이어가는 어린 학생들의 문제가 이어진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아 가며 찍은 사진에 보정을 더해 ‘아름답고 건강한 몸’으로 여기는 세상이다. 그래도 나는 권력과 미디어가 주입한 허상의 잣대에 휘둘리고 싶지는 않다. 허리를 꼿꼿이 펴지 않으면 접히는 살들과 십여 년 전 급격하게 자라며 새겨진 튼 살, 듬직한 팔뚝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올여름에는 민소매로 된 옷을 입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참고자료

     

    김가영, 권웅, 「소셜미디어에서 긍정적 신체이미지 문화의 가치 탐색: 바디 포지티브 캠페인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리듬운동학회지, 14(1), 2021, 39-58.

    임인숙, 최지원, 「신자유주의적 외모 통념과 한국 여성의 외모 감시」, 한국사회학, 56(1), 2022, 115-149.

    정수진, 임은혁, 「소셜미디어에서 전개되는 플러스 사이즈 패션 액티비즘-애슐리 그레이엄 (Ashley Graham) 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패션디자인학회지, 22(4), 2022, 67-82.

    황지성, 「비정상 신체의 궤적 읽기: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장애운동의 교차를 모색하며」, 한국장애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2018(3), 2018, 39-54.

     

    ―동국교지 83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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